리리자크
문득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주변은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여있었다. 한치앞도 보이지않는 시야에 당황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이윽고 저멀리서 무엇인가 희미하게 아른거리기시작해 다급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엇이라도 좋다. 이런 어두운 곳에 혼자있는건 사양이었다.시간이 흘러도 가까워지지않는듯한 느낌에 조금 더 속도를 높여 달리듯걷기시작했다. 한참이지나 그곳에 다다르자 보이는 것은 자신이 익히 아는 이의 주검이었다.
곤히 단잠을 자던 아이자크는 순간 발작이라도 일으키듯 자리에서 벌떡일어났다. 순식간에 식은 땀으로 온몸이 축축해지며 오한이 들어 몸을 부르르떨었다. 꿈이었나. 두려움으로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아직도 떨리는 손으로 제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기분나쁜 꿈이다. 그가, 죽을리가 없지않은가. 멀쩡하게 살아서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데. 순간 가슴이 답답하며 숨이 턱 막혀와 제 가슴께를 그러쥐었다. 사실은, 두렵다.
그는 레지먼트의 교관이다. 그리고 실제로 임무를 나가야하는 레지먼트의 한사람이다. 아직 어리버리한 훈련생인 자신과는 달랐다. 항상 그는 자신을 아껴주었고 자신은 그를 동경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동경을 넘어선 그 무언가일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분명 귀찮기만한 꼰대였는데. 어느새 그는 아이자크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잡고있었다.
"벌써 일어났어?"
아이자크의 방문을 벌컥 열며 프리드리히가 들어왔다. 요녀석, 평소에는 늦잠자더니.... 왜이렇게 땀을 흘리냐? 어디 아파? 기분이 좋은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다가와 아이자크의 등짝을 한대 팡 치던 그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이거 상태가 많이 안좋은거같은데. 자신이 괜히 때린건가 싶어 조심스럽게 아이자크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 어디 아픈.. 으왁?!"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죄책감에 절로 풀이 죽은 그가 조심히 말을 내뱉던 도중 아이자크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랐지만 이내 제 품안에서 파들파들떨기시작하는 여린 것이 안쓰러워 조심스럽게 마주안아주었다. 교관. 왜부르냐, 아이자크. 꿈을 꿨어요. 무슨 꿈인데. 악몽이냐? .... 당신이 죽는 꿈이었어요. 그것 참, 재수없네. 당신이, 죽어서. 나는... 아이자크, 그건 꿈이다. 개꿈이야. 나는... 잊어버려.
차분히 어르며 등을 토닥여주자 심호흡을 하나싶더니 점차 떨림이 멈추는 것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또 뭐라고. 그런 꿈에 울다니, 이 녀석도 아직 애는 애구나. 괜시리 오늘따라 귀여워보이는 것에 손을 내려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금새 반응이 왔다. 어딜 만져요! 그냥 토닥여준건데, 뭐. .. 아 됐어요, 그런 꿈에 걱정한 내가 바보지! 그래그래, 알고는있네? 아, 씨.... 금새 말문이 막혀 눈을 데록데록굴리는 것에 조금 울었던건지 발갛게 부어오른 눈가를 살살쓸어주었다.
"아이자크, 걱정하지마."
나는 죽지않아. 내가 누구야, 프리드리히야. 너희 교관. 임무가 있더라도 절대로 죽지않고 돌아올게.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어투에 짐짓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아이자크가 입을 열었다. 진짜죠? 그럼. 약속해요. 약속할게. .. 반드시, 살아돌아와요. 그래. 나보다 먼저 죽지말아요. 어쭈, 젊은 녀석이? .. 대답은요? 알았어, 알았어. 잊지말아요. 나보다 먼저 죽지않겠다던 그 말.
... 했잖아요. 약속했잖아요.
"나보다 먼저 죽지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프리드리히."
소용돌이를 제거하러간 부대는 전멸했다. 그것만이 이제 막 훈련생을 벗어난 그가 들을 수 있던 소식의 전부였다.